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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m/Journalist

[칼럼] 이대로 나를 사랑하면 안 되나요

신은정 기자


“너를 이해할 마음도 없다. 그래도 부모 대접은 해줘야지.” “제가 전화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우선권을 달라는 얘기예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제가 결정해요…… 그리고 날 대신할 존재를 찾아요.” 


사춘기를 거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부모와 나눴을 법한 대화다. 2013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이자 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아들의 자리(Child's Pose)> 속 엄마와 아들의 얘기다. 엄마는 삼십대 중반이 된 아들을 정신적으로 떠나 보내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녀는 울며 얘기한다. “부모는 자식을 통해 꿈을 찾고 못다 한 꿈을 이룬다”고.


자크 라캉은 저서 <에크리(Ecrits)>에서 프로이트의 근원적 나르시시즘을 재해석해 ‘거울단계(Mirror stage)’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거울단계를 설명하면서 6~18개월 사이 유아를 예로 들었다. 유아는 언어세계인 ‘상징계’로 들어서기 전 자신과 대상을 구별하지 못한다. 거울단계에 들어선 인간은 거울 속 이상적 자아(ideal ego)를 자신의 본 모습으로 착각한다. 거울단계는 유아기를 벗어난 정상인에게도 나타나는데 마치 유아가 자신의 욕망을 어머니의 욕망과 동일시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 거울 속에서 본 자신의 모습을 총체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이상적 자아와 한 몸이 되기 위해 공격성을 띠게 된다.


지난해 9월 29일 경찰청이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에게 제출한 존속살해 수치를 보면 한국사회에 거울단계인 부모의 수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발생한 존속살해 범죄는 287건, 한 해 평균 57.4건으로 매주 한 건꼴로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기간 부모를 폭행한 존속상해 범죄도 2193건이나 된다. 외국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존속살해 수치는 확실히 높다. 2012년 발간된 경찰백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살인사건 중 존속살해가 차지하는 비율은 4.3%로 1~2%인 서구의 최대 4배다. 


 

▲ 성적압박에 못 이긴 고3 학생이 구타, 감금을 가하던 어머니를 살해한 2011년 '광진구 존속살해 사건'. ⓒ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이런 현실을 반영한 노래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9집 앨범 <굿바이, 그리프>(Goodbye, grief)를 발매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는 쇼케이스에서 ‘디어 마더(Dear Mother)’라는 곡을 소개하며 ‘자식의 성적과 성공에 집착하는 엄마를 살해한 수험생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고 모티프를 얻어 곡을 만들었다’고 했다. 노래 속 아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당신의 바람대로 착한 아이가 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 당신에겐 그걸로 충분하지가 않았고 아직 어린 나의 인생을 실패다, 끝났다 했지. /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왜 나를 그런 작은 구덩이에 밀어 넣었나요? / 눈 감은 채, 귀 막은 채, 입 닫은 채, 마치 죽은 체 살기 바란 건가요? / 이대로의 나를, 모자란 나를, 사랑해 주면 안 됐나요? / 왜 나론 안 되나요? 왜 내가 미웠나요? 왜 나를 낳았나요?’


범죄심리학자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도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도박중독을 제외한 일반적 패륜범죄의 원인을 ‘잘못된 양육’으로 보았다. 그는 지나친 학대나 방임뿐 아니라 애정과잉이나 과잉보호로 자녀가 잘못된 인격을 형성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으로 꼽았다.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는 자녀의 사회성과 적응력을 떨어뜨리며 자녀가 대인관계나 성취에서 실패할 가능성을 높인다. ‘그런 자녀’를 키워낸 부모는 ‘헬리콥터 부모’와 비슷한 행동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고, 자녀 또한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되기 쉽다. 극단적인 경우 성취와 실패의 원인을 모두 부모에게 돌리는 패륜범죄의 가해자로 뉴스에 등장할 수도 있다. 


라캉은 <욕망이론>에서 “인간은 대상이 허상임을 알 때 그것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시선 속에 타인을 억압하는 욕망의 시선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을 때 좀 더 쉽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제평론가이자 에미상 수상 배우인 벤 스타인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라 했다. 헬렌 켈러 또한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든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녀 양육에는 적절한 ‘놓음’도 필요하다. 거울 속을 들여다보라. 그 안에 비치는 것이 당신인가 아니면 당신의 자녀인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